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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 신창원 탈옥 사건 정리

by Occult.s 2020. 2. 12.

신창원(申昌源)은 희대의 탈옥수로 유명하다 감옥탈출 영화 쇼생크 탈출을 상상하면 된다 신창원(申昌源) 1967년 5월 28일 (52세)로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서 태어났으며 평산 신씨며 174cm, 67kg,5남매 중 넷째(3남)다

 

신창원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하신리에서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나 지독한 가난도 고통이었지만 모친이 간암으로 떠났고 아버지가 사랑해주었다면 이렇게까지는 엇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신창원을 때렸고 나중에는 계모가 들어왔다 계모는 신창원의 동생이 아픈데도 아무 관심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급우들로부터 잦은 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렸으며 제대로된 교육도 받지 못하였고 그래서 국민학교 시절부터 가출을 시작했고 결국 중학교에 진학한 지 3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1982년에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갔다

 

이런 불우한 가정환경인해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었다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남의 밭과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쳐 먹고 닭, 수박 서리를 하기 시작한 게 도둑 인생의 시작이었다
신창원은 달리기가 빨라 도망치면 아무도 못 잡았다고 동네 사람들이 전한다. 또한 무작정 멀리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나무 위에 올라가 숨어서 추적자의 동향을 살피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좀도둑질로 경찰서에 끌려간 것이 14살 때였다 신창원의 친아버지 신흥선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찰에게 신창원을 구속 수감시키라고 계속 요구했다 아버지의 의도는 정말 좋은 뜻이었는지 어떤지 몰라도,이 때문에 신창원의 인생은 망가졌다 

그가 범죄자가 된 계기는 그의 저서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는 막말을 듣고 잘못된 생각을 품었다

그렇게 신창원은 소년원을 갔다오고 감옥에 갔다 올때마다 범죄는 나날이 대담해졌으며, 결국에는 강력 범죄까지 가게 되었다

 

신창원은 어릴 때부터 싸움을 잘 했다 권투를 배운 신창원은 걸핏하면 남의 싸움에 끼어들었고 그러다 한 번은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한 일이 있었는데 합의금이 없어 후배들과 함께 돈 좀 있어 보이는 행인을 협박해 돈을 털기도 했다

신창원은 출소 뒤에 서울로 올라갔다. 음식점 배달부 등을 하다 1983년 절도죄로 또 다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고 서울에서 고향 선후배 4명과 모의해 슈퍼마켓과 금은방 등에서 강도 행각을 벌였다

 

1989년 3월 28일,귀가중인 문구도맹상 주인등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이중 한명을 살해하고 2백여만원 빼았아 달아났다 주범인 김양훈과 3명은 체포됐지만 신찬원은 총상을 입고 도주에 성공했다 하지만 반년 뒤에 체포되었다
검거 후,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후 1994년 부산교도소에 이감 되었다

 

이불 자는것처럼



탈옥 사건,이후 1994년 부산교도소로 이감되어 복역하다 1997년 1월 탈옥을 저질렀다 노역 작업 도중 손에 넣은 작은 실톱날 조각으로 하루 20분씩 무려 4개월간 화장실 쇠창살을 몰래 조금씩 그어 마침내 지름 1.5cm의 쇠창살 2개를 끊었고 이불을 둘러쓰고 자는것처럼 한뒤 감방을 빠져나왔다

 

환풍구

그리고 외벽 환기통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끊은 쇠창살로 20m 가량 떨어진  교도소 내 교회 신축공사장 철담장 밑의 언 땅을 폭 53cm 깊이 20cm 가량 파내어 공사장으로 들어간 후 공사장에서 주운 밧줄을 타고 외부로 통하는 공사장 펜스를 넘어 교도소를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는 데 1시간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탈옥을 위해 좁은 곳을 지나가기 쉽도록 15kg을 감량하였고 감시를 줄이기 위해 오랜기간 모범수로 지냈다고 한다
교도소를 빠져 나간 신창원은 500m 떨어진 화훼 농가로 침입하여 옷을 훔쳐 입고 자전거를 훔쳐 4km를 달려 구포사거리까지 간 뒤, 택시를 타고 서울로 잠입했다 이후 신창원은 탈옥해 2년 6개월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도주했다. 그는 탈옥을 위해 4개월을 준비했다


2년 6개월간 신창원이 경찰의 추적을 피할수 있었던 이유?

 



도주를 다니는 동안 빈집들을 털며 훔친 현금으로 생활했고 이동수단은 훔친 차였다 도망 다니면서 잡힐뻔 했지만 체포 직전에 경찰의 추격을 무려 6번이나 따돌렸다 연 인원 97만 여명이 동원되었지만 신창원을 잡지 못했다
이래서 신창원은 방송을 타며 전국구 급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현상금이 1000만원에서 5000만원이 넘어갔다 전국을 오가며 약 9억 8000여만원을 훔쳤고, 훔친 돈으로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유혹해 동거하며 아지트로 삼았다 신창원이 도피생활 중 만난 여성은 최소 12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방 종업원 등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금다발을 보여주며 동거 생활을 제안했다 신창원은 나름대로 도주하면서 철칙이 있었다 그간 여성들을 만나 부부 행세를 했으며 외출할 때 반드시 안경과 가발을 썼다. 위장술이 매우 뛰어났다 장소 선정에 신중했다. 언제든지 도주할 수 있도록 뛰어내리기 용이한 2층을 선호했다

 

심지어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창가 자리에 앉았다  도주로를 미리 파악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리고 신창원은 평상시에 운동을 많이 했다 검거 당시에도 집안에 마치 체육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운동기구가 있었다는 것을 보아 도주를 위한 꾸준한 체력관리를 했었다

 

 

검거

 

검거,1999년 7월 16일 전라남도 순천시 연향동 대주파크빌 104동 205호에서 가스레인지 수리공이었던 신고자 김영근 씨는  당시 우연히 의뢰 받은 집을 수리하다가 신창원을 봤고 신창원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가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으며 경찰에 신고 후 심지어 부동산에 들어가서 그 집이 여자의 명의로 된 건지 확인까지 했다

 

검거된 뒤 징역 22년 6개월이 추가되었고 그는 흉악범을 가둬두는 청송교도소의 2.6m2의 독방에 수감되었다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53)이 국가인권위원회에 20년간의 독방 생활과 폐쇄회로(CC)TV 감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진정을 넣어 인용 결정을 받았다 신창원은 1999년부터 재수감되며 독방에 수용돼 CCTV로 일상을 감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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