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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풍선 아저씨 행방불명 사건

by Occult.s 2020. 4. 5.

1940년 도쿄도 피아노 조율사 일가에서 태어난 풍선 아저씨 스즈키는 쿠니타치 음악 대학 부속 고교를 졸업하고 야마하의 계약 사원으로 코가네이시에서 피아노 조율업을 시작했다 1984년 44세,음악 교재 판매 회사 뮤직 앙상블을 개업했지만 실패를 맛보았고 여러 음악 사업을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아 빚에 쫒기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풍선아저씨는 프랑스 영화 붉은 풍선을 보고 난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풍선을 타고 미국으로 가서 빚을 갚겠다는 황당한 발상을 하기 시작한다 스즈키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 모아 큰 풍성 4개를 구입했고 판타지호를 제작하게 된다

 

1989년 3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3천만엔(3억 원)에 가까운 참가비를 내고 판타지호를 출품하게 된다 하지만 전시 위치도 좋지 않았고 박람회 자체도 흥하지 않게 된다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대로 이따가는 망하겠다는 생각에 스즈키는 박람회 마스코트인 '부루아쨩(ブルアちゃん) 인형옷을 입고 높이 30미터의 탑에 올라가서 단체 버스 주차장을 개방하라고 항의를 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1990년 뮤직 앙상블은 5억엔 가량의 채무를 앉고 도산했다

 

 

1992년 4월 17일,풍선 아저씨 스즈키는 경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쿄 오타 구 타마가와 강에서 치바현 쿠쥬쿠리 해안을 향해 의자에 5미터 크기의 풍선과 2.5미터 크기의 풍선을 각각 2개씩 동여매고 오후 12시 45분경 날아올랐다
이 때 15kg의 모래 주머니 2개가 떨어져나가며 고도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고도가 올라가자 풍선 한 개를 끊어냈고, 결국 도쿄의 한 민가에 불시착하고 말았다
그의 비행 장면은 언론을 통해 생중계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반년이 지난 1992년 11월 23일,스즈키의 지인 도시샤대학 교수 미와 시게오(三輪茂雄)와 학생 7명과 지지자들의 모인 가운데 스즈키는  헬륨 풍선 여러개를 단 판타지 호의 시험 비행을 시작했다. 단순한 시험 비행이였지만 판타지 호는 120미터까지 올라간뒤 지상에 착륙했다 그런데 16시 20분, 스즈키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한뒤 로프를 풀고 미국을 향해 출발했다 태평양을 횡단해 미국에 가겠다는 그의 의지를 꺽지 못했다

 



다음 날 풍선 아저씨 스즈키는 휴대폰으로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서 안심 시켰다 하지만 2일 뒤 스즈키로부터 SOS 신호가 발신되었고 해상보안청의 수색기가 출동했다. 판타지 호는 미야기현 긴카산 동쪽 약 800m 해상에서 발견되었고, 비행기를 본 스즈키는 비행기를 향해 앉아 있는 자세로 손을 흔들면서 SOS 신호를 중지했다

 

당시 판타지 호의 고도는 평균 2,500m로 높을 때는 4,000m 상공까지 도달했다 3시간 후 판타지호는 구름속으로 사라졌고 판타지 호 수색기는 추적을 할수 없었다 그게 풍선 아저씨 스즈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전문가들은 풍선을 타고 미국에 절대 갈수 없으며 바다에 떨어져 사망했을거라 예상했다
그렇게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1999~2000년 사이에 사망한것으로 확정되었다

이후 스즈키 아내 이시즈카 유키코(石塚由紀子)는 남긴 빚을 갚느라 고생을 했으며 2000년에 남편을 회상하면서 '풍선 아저씨의 조율(風船おじさんの調律)'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2016년 포르투갈인 남성과 재혼한 직후인 2017년 담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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