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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속에 빠진 연천 530GP 김일병 사건 파일

by Occult.s 2020. 5. 31.

연천 530GP 사건은 피의자 김동민 일병이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기관단총 44발을 난사해 6명이 현장에서 즉사, 이후 체력단련장으로 이동한 김동민 일병은 그 곳에서 만난 김종명 중위를 K1 기관단총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실제로는 김동민 일병이 모두 총으로 살해했다고 했지만 북한의 공격을 받아 은폐 조작 했다는 것이다

 



2005년 6월 19일 새벽2시 30분, 대한민국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중부전선 비무장 지대(DMZ) 내 육군 28사단 소속 GP에서 김동민 일병(1984년 8월 14일생, 당시 만 20세)은 수류탄 1발과 25발 탄창 두개를 휴대하고 내무실로 이동하면서 정모 상병의 K-1소총을 절취하고 화장실로 잠입했다

 

이후 내무실에 이동한 김일병은 수류탄을 투척 후 상황실로 이동했고 체력 단련장에서 소초장 김종명 중위를 사살하고 상황실에서 나오는 신임 소대가 이모 중위를 향해 총을 난사 했다
그리고 취사장에서 조모 상병을 쏘고 확인 사살을 한뒤 다시 내무실로 이동해 남은 총탄 25발을 전량 난사 하고 전방 초소 이모 상병에게 사격했으나 실탄이 떨어져 실패를 했고 자기 근무지 후방초소로 복귀했다

 

새벽 2시 50분경 신임 소대장과 병사 5명이 무장해제를 시켰고 구금을 시켰다

 



이 사건으로 GP장 김종명 중위(26.학군 41기), 전영철(21), 조정웅(21), 박의원(22), 이태련(21), 차유철(21), 김인창(21), 이건욱(20) 모두 상병이 사망했고 김유학 일병(20), 박준영 일병(20)이 부상당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김일병의 소행으로 밝혀졌지만 범인이라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김일병의 범행을 목격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생존 병사들은 수류탄과 총소리만 들었다는 진술이다 오로지 김일병이 범인이라는 유일한 증거는 자백이었다

국방부는 “김일병이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인격모욕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선임병 등을 살해했다”라고 밝혔지만 생존한 소대원의 진술서는 소대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 했다는 것이다

 

2007년 9월 28일, 연천군 총기 사건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김동민 일병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작전 수행 중 북한의 공격을 받아 발생한 사건이라고 의혹을 제기하였다
이후에도 유가족들과 보수단체들은 노무현 정부 차원에서 당시 남북관계를 위해 사건을 은폐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특검 실시와 해당 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지속적으로 열었다

당시 군 수사기록, 상황 보고서, 부대 일지, 장병 진술서 등에 따르면, 상황 근무자들과 GP 소대원들은 최초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정정되었고 이 사건은 김일병의 사건으로 변하게 된다

 

김일병



김일병 사건의 의문점은 너무나 많다

1 김일병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다, 김일병의 범행을 목격한 사람없다 오로지 김일병의 범인이라는 증거는 자백뿐이다
2 내무실의 천장과 관물대가 너무 깨끗하다,수류탄과 총기 난사를 했던 내무실의 상태가 아무런 손상없이 너무 깨끗했다
3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수류탄을 쥐고 던졌을 경우 지문이 남지만 그 당시 김일병의 지문은 남아 있지 않았다
4 수류탄의 파편이 다르다,한국산 수류탄 파편이 아닌 북한 수류탄 파편이라는 것이다
5 피해자 유족들이 김일병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을 했고 군부대에 진실을 요구 했다

6 피해자들의 상흔이 이상함. 절대 수류탄의 폭발 파편에 의해 나올 수 없는 상흔
7 내무부조리가 있던 게 맞나 싶었던 김 일병의 수양록
8 당시 무전내용의 기록에는 02:39경 530GP 적 총격 도발 9발이라고 적혀있었다

 

결국 2017년 3월 25일 무려 12년 만에 재수사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김동민 본인이 자신이 저지른 일이 맞다는 진술을 했고 이 사건은 미궁속으로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김일병은 현재 육군 교도소에 수감중이지만 확인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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