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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군대사건사고, 제2연평해전

by Occult.s 2020. 6. 8.

제2연평해전(第二延坪海戰)은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일어난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이다 제1연평해전으로부터 3년 후인 2002년 6월 29일은 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 이날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이남지역에서 북한의 무력 기습도발로 남북 간 충돌이 일어났다

 

 

2척의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과 등산곶(육도) 388호정이 NLL을 1.1km 침범하여 대한민국 해군 해군 고속정 4척이 교전수칙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북한 중형 경비 초계정에서 예고없이 85mm포 기습 발사를 시발점으로 북한과의 교전이 시작되었고 사격대응명령을 내린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은 초탄 명중 이후 4분 후인, 37mm 포탄이 함교에 명중해 아비규환이 된 찰나 저격수의 총탄에 등을 피격당해 몸을 떨다 눈을 감고 일자로 누운 채 전사하였다

 

이후 이희완 부장이 지휘권을 가졌다 조타장 한상국 상사(당시 중사(진)) 역시 조타실 피격으로 전사, 기타 승조원들이 중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사격으로 인해 엔진이 정지되고 전력 공급 기기가 파괴되어 357정은 전투 불능 상태가 되고 만다

 

이러한 극박한 상황속에서 이희완 중위는 왼쪽 다리엔 고사총 탄두 관통상, 오른쪽 다리는 37mm 2연장 고사포탄에 부상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진두지휘를 감행하였으며 2cm 시 발칸포가 전기 계통이 나간 상황에서도 비상 전력을 가동하고 공기 유압 펌프나 스위치 등으로 어떻게든 포를 조작하여 수동으로 발사했다

 

대응 사격을 한 지 12분 후 발칸 담당 병기부사관 황도현 중사는 헬멧을 쓴 두부에 37mm 포탄을 맞아 두부의 3분의 1이 포탄 탄두에 함몰되어 없어진 상태로 방아쇠를 잡고 안은 채 전사하였고 조천형 중사는 포탑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해 전신 화상을 입고 질식사한 채 방아쇠를 잡고 안고 있었다

 

M60 기관총을 맡고 있던 서후원 중사는 684에 승조한 저격수에게 왼쪽 흉부를 관통당하고 전사를 하였고 갑판에서 소병기 사격을 담당하던 승조원들과 기관실, 통신실에 있던 승조원들 다수가 벽을 관통한 총포탄과 7호 발사관 등의 파편에 의해 부상을 입게 된다

 

그 와중에 의무병 박동혁 수병은 총상과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조원들의 구호를 위해 분투했다

 

권기형 상병은 자신의 왼손이 고사총과 파편에 부서져 왼쪽 손가락을 못 쓰는 상태로 서 중사가 전사한 거치대 앞에 뛰쳐나가 서후원 하사와 박동혁 상병이 쏘던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오직 오른손으로만 남은 잔탄을 그대로 등산곶 684호에 전탄 발사를 했다

 

대한민국 해군 소속 참수리 357호 교전이후 심한 선체 손상으로 침몰했으며 치료를 받던 박동혁 병장(당시 상병)이 국군수도병원에서 전사했으며 실종되었던 한상국 중사(당시 하사)가 침몰 41일째 날 조타실에서 발견되어 53일만인 8월 21일, 침몰된 배가 인양되고 수습되어 결과적으로 총 6명전사 19명 부상하였다

 

제2연평해전 대한민국 해군 전사자 명단

 

윤영하 소령[23](해사 50기, 당시 대위)
한상국 상사[24](해군부후 155기, 당시 중사(진))
조천형 중사(해군신병 402기[25], 해군부후 173기[26], 당시 하사)
황도현 중사(해군부후 183기, 당시 하사)
서후원 중사(해군부후 189기, 당시 하사)
박동혁 병장[27](해군신병 456기, 당시 상병)

북한은 등산곶 684호정 파손이 되었고 13명이 전사했고 25명이 부상당했다

 

제2연평해전은 1999년 제1연평해전의 일방적 패배에 따른 보복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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